어제 그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우봉 이매방 선생.
7세때 목포 권번(기생 훈련스쿨)에 들어가 춤을 배우며 입문한 그가
춤인생 7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으나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직접 녹음실을 찾은 그를 나는 회사일(녹화편집)로
마포의 한 스튜디오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570) this.width=570" vspace=3 border=0 name=content_img[]>
인사를 건네자 개인적인 친분으로 익히 알던 차에 어인 일이냐는 말건넴으로
그의 다른 모습을 볼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내가 하던 일을 팽개치고 그 어른의 작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사용할 음악 작업을 하는데,
원곡의 리듬이 춤과 어울리는지를 조절하며 빠르기를 맞춰나가는 작업이
이루어 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공연 춤곡을 직접 작업하기 위해 녹음실을 찾아온 이매방선생.선생은 춤곡이 흘러 나오자 즉석에서 춤을 추며 음악의 빠르기 조절을 기사에게 주문하였습니다>
난 사진기자 출신답게 즉석에서 카메라를 빌려 그모습을 찍었습니다.
역시 카메라 파인더로 선택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담는 일은 행복한 일임을
다시한번 깨달으면서 그의 모습을 찍었습니다..
노스트로보로 찍는 것이라서 손떨림을 최대한 적게하려 해도 상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엔 인간한계를 느낄수 밖에 없었습니다만,그래도 그를 우연히 만나 사진작업을
할수 있다는 것이 내겐 행복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천착해온 '공인의 또 다른 모습' 작업의 농도를 짙게 해줄 것을
알기에 행복하였습니다.
아무튼,
드디어는 자신이 직접 춤을 추며 장단고저를 재는 등 아주 섬세한 음악적 감수성으로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하는 것을 나는 옆에서 바라 볼수 있었습니다.
<녹음실에서 음악을 들으며 춤사위에 맞는 장단을 쪼그려 앉아 연습하고 이매방 선생>
그런가하면 기존의 음악에 자신이 직접 장고를 치며 덧입히는 녹음을 하여
자신만의 춤곡으로 변환시키는 작업도 하셨습니다.
<드디어 장단을 16마디로 결정하신 후 녹음에 돌입,헤드폰을 끼고 슬리퍼형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고 덧씌우기 장단 녹음에 들어간 우봉 이매방 선생,우스워 보이기도 하나 인간적 면모가 드러나는 대가의 삶이 그저 향기로 다가온다>
"요즘 사람들은 춤하는 사람들은 춤만하는데 그건 틀린것이야.전통춤은 가무악을 두루 갖추어야만이 제대로 된 춤꾼이 될수 있는거야."라며
교육정책과 요즘의 춤꾼들을 두루 걱정하는 그의 모습에서 세월의 흐름을 감지할수 있었습니다.
얼마전 '스승과 제자'라는 TV프로그램에서 그를 방영한 적이 있는데,
제자를 위해 직접 재봉틀을 잡고 무대복을 만들어주는 장면에서 감동을 받은 바 있었습니다.
대가는 역시 대가다웠습니다.
자랑스러웠습니다.
춤인생 70주년!
승무(27호)와 살풀이 (97호) 중요무형문화재인 그가 뒤집어 쓰고 있는 감투가
오히려 초라해 보였습니다.
<이매방 선생이 녹음실에서 자신이 공연할 '초립동'. 음악에 맞추어 늦총각이
술한잔 마시며 신세타령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국민가수'라는 등 대중 연예인들을 그렇게 불러주는 예가 심심치 않은데
이런 예인을 '국보 춤꾼' 등의 극존칭 명예를 붙여 주는 대접을 베풀수는 없을까요?
<이매방의 약력>
우봉 이매방 선생.
7세때 목포 권번(기생 훈련스쿨)에 들어가 춤을 배우며 입문한 그가
춤인생 7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으나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직접 녹음실을 찾은 그를 나는 회사일(녹화편집)로
마포의 한 스튜디오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570) this.width=570" vspace=3 border=0 name=content_img[]>
인사를 건네자 개인적인 친분으로 익히 알던 차에 어인 일이냐는 말건넴으로
그의 다른 모습을 볼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내가 하던 일을 팽개치고 그 어른의 작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사용할 음악 작업을 하는데,
원곡의 리듬이 춤과 어울리는지를 조절하며 빠르기를 맞춰나가는 작업이
이루어 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공연 춤곡을 직접 작업하기 위해 녹음실을 찾아온 이매방선생.선생은 춤곡이 흘러 나오자 즉석에서 춤을 추며 음악의 빠르기 조절을 기사에게 주문하였습니다>
난 사진기자 출신답게 즉석에서 카메라를 빌려 그모습을 찍었습니다.
역시 카메라 파인더로 선택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담는 일은 행복한 일임을
다시한번 깨달으면서 그의 모습을 찍었습니다..
노스트로보로 찍는 것이라서 손떨림을 최대한 적게하려 해도 상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엔 인간한계를 느낄수 밖에 없었습니다만,그래도 그를 우연히 만나 사진작업을
할수 있다는 것이 내겐 행복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천착해온 '공인의 또 다른 모습' 작업의 농도를 짙게 해줄 것을
알기에 행복하였습니다.
아무튼,
드디어는 자신이 직접 춤을 추며 장단고저를 재는 등 아주 섬세한 음악적 감수성으로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하는 것을 나는 옆에서 바라 볼수 있었습니다.
<녹음실에서 음악을 들으며 춤사위에 맞는 장단을 쪼그려 앉아 연습하고 이매방 선생>
그런가하면 기존의 음악에 자신이 직접 장고를 치며 덧입히는 녹음을 하여
자신만의 춤곡으로 변환시키는 작업도 하셨습니다.
<드디어 장단을 16마디로 결정하신 후 녹음에 돌입,헤드폰을 끼고 슬리퍼형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고 덧씌우기 장단 녹음에 들어간 우봉 이매방 선생,우스워 보이기도 하나 인간적 면모가 드러나는 대가의 삶이 그저 향기로 다가온다>
"요즘 사람들은 춤하는 사람들은 춤만하는데 그건 틀린것이야.전통춤은 가무악을 두루 갖추어야만이 제대로 된 춤꾼이 될수 있는거야."라며
교육정책과 요즘의 춤꾼들을 두루 걱정하는 그의 모습에서 세월의 흐름을 감지할수 있었습니다.
얼마전 '스승과 제자'라는 TV프로그램에서 그를 방영한 적이 있는데,
제자를 위해 직접 재봉틀을 잡고 무대복을 만들어주는 장면에서 감동을 받은 바 있었습니다.
대가는 역시 대가다웠습니다.
자랑스러웠습니다.
춤인생 70주년!
승무(27호)와 살풀이 (97호) 중요무형문화재인 그가 뒤집어 쓰고 있는 감투가
오히려 초라해 보였습니다.
<이매방 선생이 녹음실에서 자신이 공연할 '초립동'. 음악에 맞추어 늦총각이
술한잔 마시며 신세타령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국민가수'라는 등 대중 연예인들을 그렇게 불러주는 예가 심심치 않은데
이런 예인을 '국보 춤꾼' 등의 극존칭 명예를 붙여 주는 대접을 베풀수는 없을까요?
<이매방의 약력>
승무(僧舞)·살풀이 예능보유자. 전라남도 무안(務安) 출생. 7세 때 목포 권번(券番)에서 춤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그 뒤 1935년 조부 이대조(李大祚)에게서 호남류의 승무를 익히고, 이창조에게서는 호남 검무를, 박영고에게서는 법고를 전수받아 춤의 기초를 쌓았다. 49년 광주극장에서 첫 무용발표회를 가진 이후 68∼78년 세계주요무용페스티벌 20여 회 참가, 81년 케네디센터 공연, 82∼85년 국악대공연 승무 출연, 86년 미국과 일본을 순회공연하였다. 87년 승무가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로, 살풀이춤이 제97호로 지정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