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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거울과 자화상

이산누리 2008. 5. 7. 18:32
 

거울의 역사는 아주 오랜 이야기입니다.

 

물거울을 거울의 역사로 치자면 말입니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빠져 죽은 이야기 ‘나르시스’는 고전입니다.

 

유리거울이 등장한 건 중세시대입니다.

그 전 까지는 금속성 거울을 썼죠.


14C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유리거울을 만들었습니다.

무거운 청동거울 (銅鏡)을 쓰다가 가벼워진 유리거울을, 흐릿한 금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다가 맑디 맑은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는 유리거울을

귀족들이 너도 나도 먼저 사들였을 것이라는 추정은 너무나 뻔합니다.

당시 여인들의 사치는 이루 말할 수 없었잖습니까.

혁명에 가까운 충격이었습니다.

자신의 땀구멍 하나까지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그래서 발달한 것이 바로 화장품 산업입니다.

찍고 바르고 뽑고 감추고 칠하고.......

와중에 더 고운 살갗을 갖기 위해 수은이 포함된 솔리만수를

미백제로 사용하던 여인들의 이빨이 빠지고 피부가 변색되는 부작용이

여기저기서 벌어졌습니다.

이 대목에서 어렸을 적 교회가는 일요일 아침,

우리나라 최초의 화장품 박가분에 동동구리무(콜드크림)로 화장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16C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유난히 화장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늙어 가면서 자신의 추함이 드러나자 거울 판매금지령까지

내렸었더랍니다.

여왕은 시녀에게 머리 염색을 시키고 보이는 신체를 하얗게 분칠하며

주름살을 가리게 했습니다.

이런 화장법 역시 귀족사회에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자국의 미술진흥을 위해 이탈리아에서 기술자를

수입하여 대형거울을 개발함으로써 나중에는 최첨단의

거울기술을 보유하기도 했습니다.

베르사유 궁전의 길이 73미터의 행랑벽면에 400개의 거울을 부착한

그 유명한 ‘거울의 방’은 이렇게 하여 생겨난 겁니다.


16~17C에는 전 유럽에 거울이 싼값에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생겨난 또 하나의 예술 장르는 바로 자화상입니다.

당시 자화상 작업은 대단한 유행이었습니다.

이렇듯 유리거울은 자유롭고 대담하며 화려한 필치의 바로크 예술이

초절정을 이룬 동력이 되었던거죠.

 <앞의 것은 1889년의 작품, 뒤는 귀를 자르고 담배파이프를 문 1887년 작품.

     고흐는 최소한 11점이상의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37세에 자살로 생을 마친 고흐는 자신의 그림이 이상하다는 세간의 소리가

듣기 싫어서 귀를 자른 후의 자화상도 그렸습니다.


사진이 발명되기 전까지 거울은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사진도 결국은 거울에 비친 허상의 산물입니다만,

아무튼 거울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화장용 외에도 탐조등이나 헤드라이트의 오목거울,백미러의 볼록거울,

카메라 렌즈는 물론이고 우주에 올라간 허블 망원경까지도 모두 거울입니다.

 

이렇듯 거울의 역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더 잘 들여다보기 위해서

만든 몸부림의 발자취입니다.

5월을 맞이하여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며

자화상 한번 그려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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