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한강대로변 재개발지역 4층짜리 건물에서 이틀째 점거농성중이던 철거민들을 경찰이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5명이 사망하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 오전 6시42분 기중기를 이용, 경찰 특공대원들이 타고 있는 10t짜리 컨테이너 박스를 철거민들이 이틀째 농성중인 건물 옥상으로 끌어올려 본격적인 진압 작전에 돌입했다. "-연합뉴스
제가 아는 한 분이 이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용산의 우리 사무실 앞에서는 상여소리가 납니다.
'이제 가면 언제오나 어허허허~~~'
저는 그분을 출퇴근하며 보아온 사람입니다.
그분은 사고 건물 바로 앞 상가에서 금은보석 시계방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이름도 모르며 가게 이름조차 모릅니다.
한번도 그가게에 가서 전지를 사본 적도 없습니다.
다만 아침 출근할 때 그분이 자전거 타고 가게로 출근하는 것을 가끔은
보았습니다.
퇴근하면서는 어린딸과 부인이 가게로 밥을 지어와서 함께 먹고 tv보는
장면을 힐끔 바라본 기억은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도 나보다 나이는 연하인듯은 합니다.
제가 그분에 대한 것은 이정도 밖에 안됩니다.
그 분이 뜨거운 불에 그만 돌아가셨습니다.
마음이 짠하고 안타까웠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그렇습니다.
제3자지만 아주 가까운 3자인듯 느껴지는 겁니다.
그 착한 듯한 분이 왜 그런 과격한 상황의 가운데 서 있었을까요.
모르지만 애잔한 마음으로 유추해 보았습니다.
사태가 이지경이 되니 재개발 대책을 다시 연구해본다던데 진즉에
왜 안되었을까요.
그 양반은 소위 시계포를 해서 먹고는 살았을겁니다.
IT니 경쟁이니,경제가 어렵다느니,첨단을 외치는 마당에 사양산업인
시계고치는 기술로 먹고살아가는 이분에게는 둥지를 떠나는 일이
엄청 두려웠을겁니다.
서너평이나 될까.
좁은 시계포에 늘 갇혀 살던 그 아저씨에게 나올 보상금은 아마도
쥐눈꼽 정도였을겁니다.
그옆 언저리에서 이분보다 대여섯배는 큰 카센터 하던 분이 겨우 3천만원
받았으니 넉넉히 쳐도 천만원 안팎이었을겁니다.
그것으로 어디가서 가게를 얻는데 보탤 것이며 ,얻었다 한들 먹고사는 문제가 보장이나 되었을까요?.
오히려 까먹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먹먹했을겁니다.
자연스레 독이 올랐을테고 어찌됐든 전철연(전국철거민 연합회)이든
어디든 자기 입장을 강하게 지지하는 단체를 믿고 그들과 행동했으리란
짐작은 당연할겁니다.
그 착하신 분 이야기는 회사 동료들에게서 들었습니다.
웬만한 시계고장은 그냥 고쳐줬으며,새로이 사려고 하면
'고쳐쓰면 되는데요' 하며 그자리에서 얼른 수리를 해주는 등 매우
인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리도 순한 양반이 왜 건물 옥상에 올라 화염병을 던지고,
곧 날아들 물대포를 그것도 이 한겨울에 맞을 각오를 했었던 걸까요.
경찰이나 당국에서 늘 말하는'엄정한 법집행'이란게 정의의 이름일수는
있으나, 단 하나뿐인 사람 생명을 우선할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가슴이 짠 합니다.
애도를 표합니다.
남은 가족은 또 어찌 살아야 하는지,,,,원,,,,,,답답해집니다.
지금도 들려오는 저 상여소리, 하얀 국화 한송이 던져 드려야하겠습니다.
2009.1.23 회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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