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카잘스, 파쇼 그리고 새의 노래]
파블로 카잘스와 스페인 내전 스페인 내란은 1936년 7월 17일, 이태리의 뭇솔리니와 독일의 히틀러로부터 물자와 군대를 대량으로 지원받은 파시스트 프랑코 장군에 의해 발발했다. 카잘스는 히틀러와 나찌가 자신의 유태인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행했던 일들을 알게 되자마자 독일에서 첼로 연주하는 것을 중단했다. 내란이 발발했을 때, 카잘스는 자신의 교향악단 연습을 지휘하면서 바르셀로나에 있었다. 그 때가 그가 사랑했던 교향악단과 함께했던 마지막 시즌이었다. 7월 18일, 그들이 바르셀로나 올림피아드와 연계하여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준비하고 있던 중 카잘스는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그 메모는 문화부 장관인 벤츄라 가쏠(Ventura Gassol)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는 반란군들이 곧 바르셀로나에 들이닥친다는 것을 카잘스에게 알려 온 것이다. 그는 다음 날 밤으로 예정된 연주회를 취소하고, 카잘스로 하여금 단원들을 즉시 집으로 보내서 전투가 발발할 때 자신들의 가족들과 함께 있게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권고했다.
카잘스는 그 메모를 교향악단과 합창단에게 읽어줬다. 그리고, 그들이 즉시 떠나려 하는지, 남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베토벤 교향곡 9번의 마지막 악장을 연주하는 것으로 대신 하려는지 물었다. 모든 단원들은 남는 것을 선택했다. 카잘스의 눈은 비탄과 좌절감으로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악보를 볼 수 없게 되었고, 합창단은 쉴러의 시를 카탈로니아어로 불렀다. “모든 사람들이 형제가 되도다, …” 카잘스는 교향악단에게, 언젠가 평화가 그의 사랑하는 고향에 다시 돌아온다면 다시 한 번 함께 모여 연주할 것을 맹세했다. 카잘스와 단원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그들은 거리들이 이미 바리케이드들과 떼를 지어 돌아다니는 폭도들로 채워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은 파시스트에게 점령되었다. 국가는 무자비한 폭도들에 의해 그 후 6주 동안 7만 5천명의 시민들이 학살되는,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피의 욕조로 변해 버렸다. 카잘스도 여러 차례 총살될 뻔했다. 한 번은 그가 파시스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는 화려한 저택에 살고 있었으므로, 폭도들은 그가 평범한 사람들의 친구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파블로 카잘스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나, 자신이 카잘스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은 믿지 않았다. 마침내 카잘스가 첼로를 들고 바흐를 연주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아름다운 음악을 듣게 되었고, 그 때에야 비로소 자신들이 누구를 죽일 뻔했는지 깨닫고 사과했다. 어느 때는 무장한 남자들이 카잘스의 집에 와서 카잘스의 친구를 체포했다. 카잘스는 벤드렐의 시장에게 전화를 걸어, 착한 사람을 체포토록 승인한 그 시장의 처사에 대해 매우 분노하면서, 강경하게 항의하였다. 이에 시장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람들을 철수시켰다. 벤드렐의 사형집행 위원회가 총살 대상자 명단을 작성할 때마다 카잘스의 이름은 대상자 목록에 올랐다. 그러나 신의 은총으로, 누군가가 항상 “아냐, 카잘스는 아냐. 지금은 안 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고, 카잘스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많은 이웃들, 동료들이 영원히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내란은 3년 동안 계속되었고, 스페인 국토는 황폐화했다. H.L. 커크(Kirk)는 자신의 거대한 카잘스 전기에서 이렇게 썼다 “국토는 피로 물들었다. 1936년 7월 18일부터 9월 1일까지의 6주 동안 공화제가 시행되고 있던 지역을 점령한 군대에 의해 대략 7만명의 시민들이 학살되었고, 반란군들이 내륙으로 이동함에 따라 희생자들의 수는 계속 늘어났다.” 1939년, 마침내 프랑코는 피로 물든 전체주의 국가의 총통이 되었다. < 이 당시의 분위기를 잘 묘사한 영화 중 하나가 켄 로치 감독의 랜드 앤 프리덤이다. 이 영화를 본 날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먹은 기억이 있다. 비디오로도 출시되었으니 한 번씩 구해 보시도록…. >[이상은 바람의 구두님의 글]
파쇼와 그에 대한 애환을 떠올리는 새의 노래[El cant dell ocells (song of the birds)]의 멋진 해석들!
카잘스의 연주
http://kr.youtube.com/watch?v=RxWT4wIgDNc&feature=related
카잘스의 연주, 애수어리고 적적한 해석을 들려주는데 이런 연주야 말로 카잘스의 위대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도 동일한 맛이 진동한다. 모국에 대한 진한 향수감이 민요라는 특이한 음악과 어우러져 처연함이 극대화되어 있다. 미국에 거주하면서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맘이 곡에 천착되어 있다.
기타와 여성 가수의 연주
http://kr.youtube.com/watch?v=ZTO7CISpz9c
잔혹한 파쇼와 살육의 섬뜩함이 흐르는 동영상이다. 기타 반주와 부드러운 여성 보컬이 숙연한 분위기를 준다. 이런 이국적인 뉘앙스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리랑을 부르는 만큼이나 그 나라 사람이 불러야 독자적인 맛을 잘 표현 할 것 같다. 한국도 일제의 노예적인 삶과 손가락 총이 난무하는 해방공간의 질곡이나 전쟁 등을 겪었다는 점에서 감성적으로 일체감을 느끼게 한다. 지금도 이런 파쇼적인 작태가 계속되는 게 현실이다. 일제시대 위안부 할머니를 매춘부로 칭하질 않나. 굴욕적이다못해 자국국민의 안전을 무시하는 협상을 국익이라고 하질 않나.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언론 탄압이 공공연하게 자행되질 않나. 통탄할 일이다. 이땅의 퍄쇼주의자들과 암울한 한국 사회의 앞날을 암시하는 노래로 들리는 건 왜일까?
Steven Isserlis 의 무반주 첼로 버전의 해석
http://kr.youtube.com/watch?v=k50emadHTJ4
바흐 무반주 첼로모음곡 처럼 선율과 반주를 동시에 진행하도록 연주한 독특한 해석이다. 바흐와 카잘스를 동시에 떠올린다.(BACH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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