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유투브에 요한나 마르치의 샤콘느 연주가 실려 있습니다. 샤콘느 연주중에서 무반주 연주의
어려움을 알게 하는 연주로 들려집니다. 굉장히 불협적이고 어둡게 들려서요.....
http://kr.youtube.com/watch?v=Dx5qN_Y92IY&feature=related
[마르치의 무반주와 허초희의 시를 사유하다.]
by BACH2138
지금 옆엔 요한나 마르치가 흐른다. 제1번 소나타에서부터 마르치 특유의 애잔함이 물결치고 있다.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곡 연주에 도전한 여류바이올리니스트는 그렇게 많진 않지만, 요한나 마르치[1924~1979/ 헝가리]는 그중에서도 선구적 존재이며 시적이고 감성어린 바흐를 선보인다.
풍기는 자태만큼이나 그 음악도 빼어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근래에 고악기 무반주 연주분야에서도 여성 연주자들의 녹음이 종종 행해지는데, 여성 아티스트들의 연주는 남성연주자들이 못 비춰내는 측면을 들추어낸다.
그러고 보니 마르치 만큼 비운이라는 말이 적절한 음악가도 없을 듯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그러한 감성으로 자신의 예술성을 선보인 여성들이 있다. 특히 난설헌 허초희[조선시의 여류시인 1563-1589]가 대표적이다.「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누나이기도 하였던 허초희는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영민하였다. 허난설헌은 조선을 대표하는 여성 지성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데, 불행한 삶을 살았던지라 그녀가 남긴 시엔 어두움과 신비스러움이 담겨있다. 마르치를 듣노라면 허초희의 시 구절이 떠오를 때가 많다.
구슬픈 비브라토 톤의 마르치와 허초희의 시 "곡자(哭子)"
마르치의 구슬픈 비브라토의 바이올린은 파르르 떨리는 몸짓 같다. 바흐 무반주연주 가운데서는 유난히도 어두운 굴곡이 느껴진다.
톤과 프레이징을 통해서 무반주곡이 이렇게 차별화 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그녀의 무반주는 장중함속에 현세적 고민을 내포시킨 듯하다.
예술이 그렇듯 창작에서 해석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입김과 숨결이 매이게 마련인데, 특히 무반주처럼 폭이 넓은 음악은 해석자에게 더욱 큰 운신의 폭을 준다.
우주적이거나 장대한 맛의 무반주가 있는가 하면, 영적인 아우라가 넘실대는 해석도 있다. 이에 비해 마르치가 보여주는 무반주는 진솔한 이야기 쪽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자신의 삶의 단면을 비추는 뉘앙스가 흘러 나온다는 것이다.
우수어린 때로는 비통한 느낌의 마르치 무반주는 허초희의 시 哭子[곡자/ 자식을 잃고 슬퍼함]를 떠올리게 한다.
去年喪愛女 거년상애녀 今年喪愛子 금년상애자
哀哀廣陵土 애애광릉토 雙墳相對起 쌍분상대기
蕭蕭白楊風 소소백양풍 鬼火明松楸 귀화명송추
紙錢招汝魂 지전초여혼 玄酒奠汝丘 현주전여구
應知弟兄魂 응지제형혼 夜夜相追遊 야야상추유
縱有腹中孩 종유복중해 安可冀長成 안가기장성
浪吟黃臺詞 낭음황대사 血泣悲呑聲 혈읍비탄성
지난 해 사랑하는 딸을 잃고, 올해엔 아끼던 아들마저 보내었네.
슬프디 슬픈 이 광릉 땅, 두 개의 무덤 마주 서 있구나.
사시나무엔 처량히 바람 일고, 도깨비불은 소나무와 가래나무에 걸렸네.
지전으로 너희 혼 부르고, 현주를 무덤에 따르노니.
응당 알듯이 너희 남매 혼은, 밤마다 어울려 놀리라.
뱃속에 아이가 있다 하여도, 어찌 다 크기를 바라겠는가.
하염없이 황대사를 읊조리며, 피눈물 쏟으며 슬픔에 목이 메이누나.
남편과 시어머니에 대한 한스러움과 자식들의 요절에 고통스러워하는 허초희의 고뇌가 한시의 정형성을 뛰어넘어 뭉클하게 다가온다.
그녀를 보면 때를 잘못 만난 시인이라는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지금 태어났다면 어땠을지 아쉬울 따름이다.
그런데 마르치의 무반주를 들으면 방향은 비슷한 뉘앙스가 느껴진다.
소나타 1.2번 보다는 특히 파르티타 1.2번에서 이런 느낌이 농후하다.
1번 파르티타의 쿠랑트 악장의 시작부분과 2번 파르티타의 알레망드 시작머리의 떨리는 울림은 거의 전율을 자아낸다.
느림의 미학이랄까? 마르치의 무반주는 대부분 느린 템포로 나아간다. 이런 면은 연주가 시적으로 느껴지도록 한데 일조했을 것이며, 곡에 서린 회색빛 시정은 우울함을 넘어 거의 우울증적 경향을 보인다. 마르치의 무반주를 오래도록 사랑해 온 것은 그녀의 영혼이 드리운 운궁이 글쓴이의 감성체계를 휘감았기 때문이다. 무반주 바이올린의 경우 멜랑꼬리한 느낌을 주는 건 많지만, 마르치의 무반주에서 들리는 멜랑꼬리함은 그녀의 삶 같이 느껴진다. 고독이 굴드의 삶이었듯…
표절로 공격받은 바흐와 허초희
바흐는 알려진 대로 편곡에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쳄발로협주곡의 경우는 단도직입적으로 그런 면을 내보이지만, 무반주 바이올린곡에서도 다를 바 없다. 3번소나타의 푸가악장이나 3번 파르티타의 프렐류드는 대표적인데, 바흐의 경우 작곡과 더불어 다른 일도 병행했기에, 짧은 시간 안에 곡을 만들어야 하는 압박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점을 트집 잡아 바흐를 공격하는 측에선 표절이란 꼬리표를 자주 달곤 했었다.
허초희에 이르면 이런 분위기는 더 하다.
한시는 극도의 정형성을 요하여 규칙을 따르다 보면 필연적으로 유사한 골격을 갖는 경우가 많다. 누구의 시를 표절했다고 하는 식의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표절로부터 자유로운 이가 별로 없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이런 입장에선 오히려 허초희가 여성이란 점 때문에 표절논쟁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변호하기도 한다. “여자가 건방지게 감히 시를 끄적거려.”란 식의 비하가 과거부터 있었던 모양인데, 질투와 시기 때문에 허초희의 시가 폄하당하는 수모를 겪은 건 아닐까?
중국 송대의 대 문장가 소철의 경우도 형인 소동파의 표현을 차용해서 쓴 게 있다고 한다. 그냥 베끼다 보니 소동파가 잘못 인용한 것까지 건드리는 우를 범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중국에서 그것도 최고의 대가까지도 그러했음을 보면 여류시인 허초희를 표절논쟁의 타켓으로 삼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부당한 측면이 있다. 옛적부터 그녀의 시는 조선에서 보다는 이웃나라인 일본과 중국에서 높이 평가되었는데, 이는 견고한 남성주의 사회의 벽을 넘지 못한 측면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허초희와 마르치의 삶에 드리워진 어두운 남자의 음영
현모양처의 모범인 신사임당(이러한 평가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임)이나 재색을 겸비한 황진이 같은 여성은 일찍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허초희는 이에 비하면 미미하게 느껴진다.
유교적 문화나 남성 우월적 경향은 여전히 남아있어 씁쓸할 때가 많다.
마르치가 한 프로듀서의 헛된 욕망과 질시의 희생물이 되었다면, 허초희는 자신을 이해 못하고 방종한 남편 때문에 괴로워했다.
그녀에겐 남이 안한 세 가지 한이 있었다. 남자로 태어나지 못하였고 더구나 김성립같은 이가 자기 남편이었는가가 그 하나요, 아이가 제대로 크지 않고 요절하는 게 그 둘이요, 마지막은 왜 조선에서 태어났냐는 것이었다. 이 세 가지가 마음의 병이 되어 요절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시 짓는 아내가 보기 싫어 거의 기방에 산 남편과는 불화도 많았다.
마르치에서 느껴지는 쓸쓸한 분위기도 난설헌 허초희의 시구절 만큼이나 절절하다.
희귀하게 존재하는 그녀의 LP판만큼이나 그녀의 무반주 해석은 독특하다.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 뼈를 여미는 슬픔, 우울증적 감성의 표출, 두꺼운 커텐속에 꽁꽁 숨겨진 보물같은 느낌 등이 이 두 여성의 예술을 접할 때 떠오르는 관념이랄까?
시대도 다르고 분야도 다르지만, 예술이라는 공통의 언어를 통해 묘한 합치점을 선보이는 건 아닌지.
허초희의 시를 읽을 땐 마르치가 떠오르고, 마르치를 들을 땐 허초희가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오늘도 허초희를 떠올리며 마르치를 듣는다.(BACH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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