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은 죽었다고 합니다.
정부는 재래시장을 활성화한다고 외치지만 정작 서울보다 시골의 장날은
볼품 없어진지 오래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역시 장날엔 쥐약장수 리어카가 꼭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를 보기는 어려워진 것도 장터의 세태가 바뀌기 때문.
반가웠습니다.
장날이라 해도 썰렁한 부강시장에 등장한 쥐약장수 리어카.
5일마다 장이서는 충북청원의 부용면 부강 장날.
거기서 만난 쥐약장사 박복규(53세)
처음엔 멀리서 망원으로 그 양반이 눈치 채지 못하게 찍었습니다.
싫어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였습니다.
좀더 가까이 다가가도 적의를 안보여서 말을 걸어 보았습니다.
대화의 첫 번째 기술은 역시나 그 사람이 하고픈 말을 하도록 하는 것.
-요즘 장사 잘 안되죠?
-말도 마유, 다죽었슈. 장사가 안되도 이렇게 안되니 원.(유세차에서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저눔의 정치가 저러니 뭐가 되나유.
-왜 그렇쥬? (충청도 버전으로 같이 가는게 동질감 느끼기엔 최고)
-첨엔 농협에서 하나로 마트 만들어서 죽어갔는데, 지금은 그것도 죽었슈. 할인마트 들어서면서부터 재래시장은 싹 죽었슈.
-장마다 찾아 다녀유?
-그래야쥬. 충청북도,남도,전 라도 까정 가유.낼은 병천 장에 갈꺼유. 거긴 엄청 커유. 서울서두 장구경하러 내려와유. 병천 순대 죽여유.이런데 순대는 돼지 냄새나구 댈 것두 아녀유.
(말이 성찬이다.가만 놔두면 속에서 나올 말이 얼마일지 모른다.잽싸게 다른 질문으로 들어가본다)
-근데 뭘 파는 거쥬? 지금 파는게 팔리긴 해유?
-쥐약, 바퀴벌레약, 개미약, 이약, 좀약 ,,,,뭐 그런거쥬.
대화도중 아줌마 한분이 개미약을 사러 왔다.
-개미고 뭐고 삭 다 죽여유, 바퀴도 죽이구..써봐야 알어. 개미가 약 부근에 왔다하면 가는 도중에 죽어 버려.무슨 벌레든지 기냥 싹 다죽어.
(역시 장에선 아줌마에게 반말투로 해야 하는 가 보다. 만원에 튜브형 개미약을 샀다)
리어카를 둘러보며 적은 목록은 대략 이렇다.
쥐싹, 초강력 바퀴박멸제, 쌀쥐약, 로케트 쥐약, 바퀴 제로, 쥐가 핥아 먹고 죽는 쿠마콘, 끈적이, 쥐킬라......
-요즘도 이약 사는 사람이 있나유?-있슈. 애들이 머리에 열이 많으니까 생겨유. 남자들도 잘 안 씻으면 사타구니에 생겨유. 나두 전에 그런거 있었는데 바르니까 한번에 다 낫슈. 냄새는 좀 독해두 좋아유.
-이가 좀 없어진지 알았는데...
-우리가 쌀밥 먹으면서 없어진 것 같여.
(오잉? 사회사적으로 새로운 통찰인 것 같아서 다시 물어봤다)
-그래유? 왜그런가유?
-쌀농사를 지으면서 농약을 많이 치잖어. 난 혼자 살걸랑. 그런데 밥해먹을라고 살을 담궈 놓으면 노란 게 떠. 그게 농약이여. 옛날에 짚세기 신고 그럴 땐 이 많았어. 우리 약은 독햐. 냄새가 좀 나도 우리약 치면 잠을 잘자. 이가 다 죽어서 가려운 게 없어져. 밤새 긁어봐 잠을 잘 수가 있나.
(말속에 질문 꺼리가 쏟아져 나온다.우선 그 자신의 삶에 대해 물어보자)
-아니 혼자 사세요?
-장사가 안되니 다 떠났슈. 여자가 돈만 빨아 먹구, 싸가지 없는 년들, 다가버렸슈. 도망간거쥬 뭐.
(그러고 보니 여자가 한둘이 아니었나보다. 박씨가 질문을 던진다)
-그년들 좀 잡아줄 수 있슈? 잡기만 하면 돈은 다 써버렸을테구 몸으로 때우라구 할꺼유.
이 때 길 옆 미용실 아줌마가 뭔소리 하는가 싶어 나와서 듣다가는 한마디 한다.
-아저씨, 여자가 있는데 그런 소리 함부로 해도 돼유? 아저씨 술챘쥬. 경찰에 이를 꺼유.
(아줌마도 농담섞인 정감 대화다. 다시 내 질문으로)
-그래서 찜질방서 자유.
-그럼 하루에 얼마를 벌어야 하나유?
-기름값,밥값에 안주 없는 소주 한병 먹을라면 3만5천에서 4만원 들어유.
-그렇담 하루에 7,8만원은 벌어야 할꺼 아녀유. 그래야 본전...하이고 대책 없네
-(드디어 욕이 나온다) 이 씨부랄 눔들 짬뽕 5천원이 뭐여, 다꾸앙 쪼가리 주면서,,,,,
-그런데 아저씨 약 말고도 명주 실타래가 있던데 그건 또 뭔가유. 여기서 그런걸 찾아유?
- 차 고사 지내는 사람들이 가끔 찾어유. 명주실에 북어 매달아 놓으면 기분 좋잖유. 보기 듬직해유. 이거 하면 차 사고가 안나유, 여자들이 와서 들이 받어유. 돈버는 거쥬 뭐.(아마도 실 팔 때 쓰는 멘트인가보다)
-그런데 요즘은 뭐가 잘 팔리나유?
-요즘 4,5월엔 좀약이 잘 팔려유. 6월에서 10월까지는 바퀴약, 개미약이구, 겨울엔 쥐약이 잘 팔려유. 농가리에 쥐들이 몰리니께 그거 잡을라구 사가유. 계절따라 삼거리라구 그래유.
(이제 질문을 마치려 하자 박씨가 자신을 소개하려 한다)
-내가유 .몇년은 됐는데 충남일보에두 났었슈, 방송에도 많이 났슈. 그땐 인터뷰하면 돈두 좀 벌었슈. 내가 지금 명함을 안갖고 왔는데 멋있게 팠슈.
-명함이유?
-내가 유명해유. ‘떳다방 장똘뱅이 쥐약장사’라니까유. 소문났슈. 명함에도 그렇게 팠슈. 큰쥐 한 마리 눠서 잘 팠슈. 하나 보내 줄테니 앞에 양반 명함 하나 주슈.
(박씨가 마무리 멘트까지 한다)
-장사가 안되니 모든게 비싼거유. 장사만 잘되믄 물건값이 좀 올라도 비싸게 느껴지지 않는거유. 정치 다 소용 없슈.그거 지들끼리 해먹는거지 우리랑 상관 없슈. 괜히 여기와서 시끄럽게 떠들기만 하지 되고나면 한눔이라도 우리같은 사람 쳐다봤나유 언제?
-아 예.(말문이 막힌다,현장의 소리는 저렇듯 차다. 정치를 믿지 못하는거다.)
-그나 저나 음료수 한잔 할래유? 서울 가려면 얼릉 가야겄네유. 조심해서 올라가유.
또 다시 자신의 쥐약,좀약을 팔기위해 장똘뱅이 박복규씨는 장바닥을 뜹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많은 걸 느낍니다.
우연찮게 4월의 따스한 햇살 아래서 ‘떳다방 장똘뱅이 쥐약장사’ 박복규씨와 부강시장의 길거리에서 나눈 1시간여의 대화.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남 탓으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다 내 잘못이쥬 뭐’라며 자신의 짐을 스스로 지고 가는 인생이었습니다.
감히 그에게 ‘희망 있나요’라며 물어 본다면 속물일 것 같다는 부끄러움이 들었습니다
이 글에 모두 담지는 못했으나 진솔한 속마음이 드러나는 대화는 햇살만큼이나 포근했습니다.
(2008년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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