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醬)은 된장,고추장,막장,청국장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된'은 '되다'로 점도가 높다는 뜻이다.
항아리에 메주를 넣고 소금물을 부어 침장을 시킨 다음 간장을 우려내고 남은 것이 바로 된장이다.
된장은 흔히 5덕의 성질을 품고 있다고 한다.
丹心 - 다른 맛과 섞여도 제맛을 낸다.
恒心 - 오랫동안 상하지 않는다.
佛心 - 비리고 기름진 냄새를 제거한다.
善心 - 매운 맛을 부드럽게 한다.
和心 - 모든 음식과 조화를 이룬다.
장은 미생물 발효작용에 의해 생성된 우연의 산물이다.
술도 그러하니 그렇다면 발효식품은 하늘이 내려준 일종의 보너스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김장담그기와 장담그는 일이 집안의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 중의 하나이다.조선시대에는 장을 담글 때 목욕재계 부터 하고 음기의발산을 막기 위해 닥종이로 입을 막았다고 한다.
장담그기가 엄격한 제례의 하나였던 셈이다.
장을 얻기 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가을에 수확한 햇콩을 삶고 쪄서 메주를 만들어 말린 다음, 다시 볏집으로 메주를 묶어 겨우내 방안에 쪄서 매달아 놓아야 한다. 이때 볏집에 붙어 있는 납두균(곰팡이의 자실체)과 효모의 작용으로 서서히 발효가 된다.
잘 띄운 메주는 겉면에 갈색과 흰색이 섞인 곰팡이가 보이고 속은 부드러운 황갈색을 띈다.
전통적으로는 정월에 담가 백일 이상 숙성시켜 봄에 먹는다.
이렇듯 어렵사리 얻어진 된장은 성과 속을 아우르는 물질로 인간의 생명에 거룩하게 기여한다.
윤대녕은 된장을 일체만물이 된장 맛에 깃들어 있다고 보고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 하는가 하면 ,고려대 민영섭 교수는 부처님 같은 존재라고 한다.
된장은 기본 쓰임새는 간장과 마찬가지로 조미료이다.
그러나 단순히 조미료로 분류하기엔 그 쓰임새가 몹시도 미묘하고 광범위하다.
된장은 체했을 때나 벌레에 물렸을 때 (특히 벌에 쏘였을 때) 약으로도 쓰고, 여름철엔 냉수에 타서 갈증을 해소하는 음료로 마신다.술을 마신 다음날 속풀이에도 된장만큼 좋은 것은 드물다. 몸에 쌓인 갖가지 독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된장은 오래전부터 항암치료를 위한 민간요법으로 사용돼 왔다.
된장은 구수하면서도 찬 성질을 가지고 있다.그래서 몸이든 마음이든 火가 들어 있을 땐 된장 냄새만 맡아도 저절로 가라 앉는다.
우스갯소리지만 부부싸움을 하고 난 뒤에도 마주 앉아 된장찌개를 먹으면 슬그머니 마음이 풀어진다.이럴 때야말로 뚝배기에 함께 숟가락을 담가야 한다.뚝배기 안에서 숟가락이 부딪히는 순간 얼어붙었던 마음도 함께 풀린다.
약 10년전에 영원 동강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며 먹어본 된장 맛에 반해 주문해서 먹었던 적이 있었다.
영월은 석회암 지대인데 이 토양이 콩 맛을 내는데 아주 유리한 지질이라고 한다.
그 이후 장인과 함께 합천을 갔을 때 그곳 전시관에서 파는 된장을 사서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서로가 맛은 달랐어도 그것이 지역적 특색을 지닌 것이려니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더욱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 한다.
객지에 살면서 문득 어머니가 끓여준 된장 찌개를 맛볼 기회를 맞게 되면
그리운 어머니 생전의 모습이 저절로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곤 어머니 얘기를 꼭 건네게 된다.일체성이 느껴진다고 봐야 할것이다.
고향을 묻게 되고 일치하게 될 때 느낌은 '역시나'라는 것으로 지역적 특성을 이해하게 된다.
옛날에 남녀간 대화 중 여자가 '나 된장 찌개 잘끓이는데...'라고 하면 그것은 네게 시집가고 싶다는 다른 표현이었다고 한다.
된장찌개를 잘�이는 식당은 비록 허름해도 주인 아주머니의 음식 실력을 인정받는다.요즘은 고기를 먹은 다음 냉면 아니면 공기밥에 된장찌개를 주문 받는다.나에게 된장찌개는 술마시는 날 속의 허함을 달래기엔 최고다.다음날 거뜬하다.밥심과 된장이 내겐 최고의 신토불이인 셈이다.
내 경험으로는 용산의 '명가'라는 토시살 전문집을 최고로 친다.
그집은 된장 찌개만을 단독메뉴로 내놓지 않았을 정도로 된장을 아꼈다고 한다.
검은 된장도 있고 노오란 된장도 있다.
다 나름대로의 맛이 다르지만 된장은 그안에서 장아찌를 숙성시킨다.
이것 또한 맛의 일가를 이룬다.
된장 안에 일체만물,혹은 어머니. 나아가 부처님 처럼 넓고 오묘한 맛이 깃들어 있음을 간파한 윤대녕의 글을 보며 탄복할 수 밖에 없다.
08.3.17
<이글은 윤대녕의 맛 산문집'어머니의 수저'에서 대부분 발췌함>